불기둥이 도시를 짓누르는 듯한 여름입니다. 물놀이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오늘(8월 1일) 아침 신문 1면에 실린 사진을 보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오히려 한산합니다. 더위를 피해 물가로 향하던 계절인데, 이제는 바닷가마저 비어갑니다. 명동 금융권에 다니는 친구는 다음 주에 몽골로 열흘 휴가를 떠난다는데 그것도 제법 괜찮은 피난법 같습니다. 원래 계획은 말을 타며 트래킹을 할 계획이었는데 동행하게 된 선배의 몸무게 때문에 그건 포기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불볕더위를 어떻게 견디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오래된 사진을 뒤적이다 서울의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청소년들의 환한 웃음을 발견했습니다.
폭포에 더위 씻는 동심 — 서울 우이동 계곡 / 동아일보 1990.7.23]
1990년 여름, 한 달 넘게 이어지던 장마가 물러갈 무렵 동아일보 기자는 우이동 계곡에서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캡션은 이렇습니다. “폭포에 더위 씻는 동심.” 그 시절 계곡은 동네 아이들이 여름이면 으레 찾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이라면 가능한 사진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방학을 맞아 집에서 뒹구는 중학생 아들이 친구들과 북한산 자락 우이동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겠다고 하면, 선뜻 허락하시겠어요. 그러겠다는 남자아이부터가 드물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제는 굳이 계곡까지 갈 이유도 줄었습니다. 집에서 에어컨을 쐬며 게임이나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물이 그리우면 동네마다 지자체가 만든 물놀이장이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분수와 인공 폭포가 흔합니다. 먼 물가를 찾아 나서는 대신, 안전하고 가까운 물가가 우리 곁으로 온 셈입니다. 기자가 계곡에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노는 풍경을 만나기도 그만큼 어려워졌겠지요.
100년 전 피서 풍경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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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지면에는 한강변에서 여름을 나는 모습이, 또 깊은 산속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이따금 실렸습니다. ‘소하(消夏)’, 곧 더위를 식힌다는 이름의 기사와 함께였지요. 비록 이번 주는 아니지만, 꼭 100년 전인 1926년 8월 15일자 동아일보에는 개성 박연폭포 사진이 큼직하게 실렸습니다. ‘사진여행(寫眞旅行)’이라는 제목으로 카메라기자가 쓴 기행문도 함께였습니다.
개성 박연폭포 / 동아일보 1926.8.15
“층암절벽 아래로 힘차게 내리찌르는 물칼(水刀)이 나의 머리에 번개를 친다.”
이백의 시구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을 빌려, 아홉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같다고도 했습니다. 사진 한 장과 이 몇 줄의 청량감을 얻으려 기자는 하루를 꼬박 걸은 셈입니다. 교통이 편치 않던 시절이라, 폭포엔 오히려 사람 그림자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니까 100년 전 폭포는, 멀리 갈 수 있는 이들이 가서 ‘바라보는’ 곳이었던 셈입니다. 내친김에 폭포 사진을 몇 장 더 찾아봤습니다. 관광버스가 다니고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전국의 이름난 폭포는 .。 많은 사람들이 ‘몸을 담그는’ 곳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무더위를 날리는 최고의 휴양시설이었던 셈입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973년 소백산 희방폭포입니다. 물줄기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소백산 희방폭포 1973.9.
아래 사진은 1975년 내연산 관음폭포 입니다. 출렁다리와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내연산 관음폭포 출렁다리 1975.7.30
아래 사진은 1983년 서귀포 소정방폭포에서 폭포수를 정수리로 받아내는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서귀포 소정방폭포 물맞이 19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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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1988년 남양주 월문리 계곡 사진입니다. 당시 사진의 캡션엔 ‘탈도시(脫都市)’라는 표현이 적혀 있습니다.
남양주 월문리 계곡 가족피서 1988.8.7
그리고 올해. 폭염특보가 내려진 2026년 7월 26일, 전남 구례 지리산 수락폭포에는 15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려는 피서객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넘기다 재미있는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폭포인데,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1979년 여름, 서울 양화교 옆에 사람이 만든 폭포가 있었습니다. 캡션은 “양화교 인공폭포에 몰린 한밤의 피서인파”. 한밤중에 서울 시민들이 나들이 나온 모습입니다.
양화교 인공폭포에 몰린 한밤의 피서인파 / 동아일보 1979.8.14
이 폭포는 애초 피서지로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공항로가 삭막하다는 지적에 따라, 그 길목을 채우려 1979년에 조성한 인공 풍경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외국 손님이 서울에서 처음 마주할 풍경이었던 셈이지요. 이듬해에는 옆에 휴게실과 벤치, 음료수대를 두고 나무를 심어 쉼터로 꾸몄습니다. 에어컨 살 엄두도 못 내고 멀리 떠날 형편도 안 되던 시민들에겐 밤나들이 명소가 되었을 겁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엔 제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들이 공항 가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이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런데 김포공항 가는 길에 있던 그 폭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폭포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폭포의 운명에 대해 정확하게 얘기하는 내용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양화 인공 폭포의 역사를 찾아보니 이랬습니다. 폭포가 들어선 땅의 상당 부분은 제대로 보상되지 않은 사유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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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들어선 휴게소와 주차장을 두고 땅 주인들이 관할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시설이 낡은 데다 인근에 새 다리까지 놓이면서, 폭포는 2010년 가동을 멈췄습니다. 애초 계획은 폭포를 없애고 그 자리를 콘크리트 옹벽으로 덮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추억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모여, 없애는 대신 되살리기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되살리는 길도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시공사 선정과 설계를 둘러싼 다툼이 이어지면서 공사비가 불어나고, 완공 시。도 여러 차례 미뤄졌습니다. 우여곡절을 지나 2026년 여름 이 자리에는 다시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복원된 영등포구 양화폭포공원을 강서구 염창동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 신설된 월드컵대교 진입 램프에 가려졌지만 위쪽에 폭포가 흐릿하게 보인다. 2026년 7월 29일 촬영.
‘양화폭포근린공원’이라는 새 이름과 함께 바위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물줄기가 되살아나 있습니다. 폭포 옆에는 소파와 탁자를 갖춘 쉼터도 놓였습니다.
복원된 양화폭포공원 모습. 사진 뒤쪽에는 소파와 탁자가 있는 휴게소도 있다. 2026년 7월 29일 촬영.
복원된 양화폭포공원 모습. 소파와 탁자가 있는 휴게소. 2026년 7월 29일 촬영.
그런데 정작 그 앞에 사람이 없습니다. 폭포가 놓인 곳은 올림픽대로 옆,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가입니다. 차를 세울 공간이 없으니 폭포를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반대편 도로에서 보더라도 월드컵 대교 램프에 가려 물줄기가 잘 안 보입니다. 걸어서 가려면 길 건너편 나이아가라 호텔 주변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47년 전 한밤중에 사람들로 북적이던 그 물가에, 이제는 물만 우렁차게 쏟아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분은 이 여름을 어떻게 나고 계신가요.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피서 비법, 혹은 혼자만 아껴두고 싶은 계곡 하나쯤 갖고 계신지요. 아깝겠지만, 그 비밀 딱 한 곳만 슬쩍 풀어주시면 어떨까요.
법원은 주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