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덥다는 지난 6일 오후 2시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스테인리스 제품 제조공장. 같은 시각 기상청이 제공하는 기온 정보는 36.3℃였다. 그러나 냉방장치 없이 바깥과 연결돼 있는 공장의 작업장에서 잰 온도는 40도를 훌쩍 넘었다.
“36도라고요? 거짓말. 여기 계속 서 있으면 40도도 아니고 50도처럼 느껴져요.” 작업장 한가운데 있는 대형 기계식 프레스 앞을 지키던 작업자는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더 더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내 “어휴, 덥다”며 에어컨이 설치된 1평도 안 되는 사무실로 몸을 피했지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이날 기자가 문래동 기계·금속 소공장 집적지 약 20곳을 둘러본 결과, 절반이 넘는 작업장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대부분 입구 전면을 셔터로 여닫는 개방형 구조인 탓에 에어컨 설치에 필요한 실내 공간이 없어서다. 셔터를 완전히 올린 채 야외와 연결된 공간이 그들의 작업 무대다. 문래동 같은 서울 도심형 제조업 집적지는 주택·카페·상가 사이에 소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공장을 넓히거나 별도의 냉방·휴게공간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
약 50평 규모의 한 금속공장에도 에어컨 없이 대형 선풍기 세 대만 놓여 있었다. 직원 신창열(48) 씨는 “20년 넘게 일했지만 이런 더위는 처음 본다. 일하는데 힘이 쭉쭉 빠진다”며 “천장이 워낙 높아 에어컨을 달아도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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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 골목에서도 이만한 규모의 공장은 다섯 곳 정도뿐인데, 큰 공장들은 냉방비 때문에 에어컨을 놓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곳에서 일하던 작업자는 한때 6명이었지만 불황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인원을 5명 줄였다. 올해부터는 신씨가 넓은 작업장을 혼자 오가며 기존 작업을 모두 맡고 있다. 신씨는 “여섯 명이 나눠 하던 일을 혼자 하다 보니 작업장 안을 계속 왔다 갔다 해야 한다”며 “사람은 줄었는데 날씨까지 더워져 이전보다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인근의 비슷한 규모 금속공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작업자 2명이 대형 선풍기 두 대에 의지하고 있었다. 한 작업자는 “에어컨을 틀려면 셔터를 내려야 하는데, 물건을 싣는 트럭이 계속 드나들어 셔터를 수시로 내렸다 올릴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바로 옆 알루미늄 파이프 제조·판매업체에서도 작업자 두 명이 긴 파이프를 들어 작업장 안과 밖을 오가며 트럭에 싣고 있었다. 햇볕을 가리려고 모자와 팔토시를 착용했으나 얼굴과 작업복은 금세 땀으로 젖었다.
폭염 속에서도 1500℃ 안팎의 열을 다뤄야 하는 소공인들도 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한 대만 놓여 있는 한 레이저 가공업체에서는 김모(52) 씨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붉은색 각관을 용접하고 있었다. 김씨는 “비키세요. 뜨거워요”라고 말한 뒤 손에 든 장비를 금속에 갖다 댔다. 보안면을 쓰지 않은 이유를 묻자 “간단한 작업이어도 원래 쓰는 게 맞다”며 “오늘 같은 날은 안에 땀이 차고 너무 더워 쓰기 싫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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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금속 판매·절단업체에서는 김정문(57) 씨가 철판을 규격에 맞게 잘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철판을 자르면 가루가 많이 날려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데, 이런 날씨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고 말했다. 작업장엔 기계 두 대와 금속 제품이 가득 쌓여 있어 에어컨을 놓을 자리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와 함께 일하던 한 작업자는 “여기서 일한 지 30년이다. 문래동 골목이 전부 카페거리로 변하고 동료들이 하나둘 떠날 때도 나는 남아 있을 만큼 이 일이 좋았다”며 “그런데 올해는 너무 더워서 도저히 못 버티겠다. 일을 그만두고 편의.이나 차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지난 2025년 7월 신설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장소에서 폭염작업을 할 경우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 개인용 냉방·통풍장치나 보냉장구 등 체온 상승을 줄일 수 있는 조치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우린 그런 것 모른다’는 반응이 다수다. 김씨는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 공장에서나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 같은 소상공인은 불황에도 일감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공장의 작업자들도 해당 기준을 알지 못하거나, 납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마다 쉬는 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비교적 규모가 작고 밀폐된 곳들은 에어컨이 설치돼 있으나 폭염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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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부품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곽경훈(48) 씨는 “규모가 작아 작업장을 밀폐하고 에어컨을 틀 수는 있지만, 가공할 때 발생하는 가루 때문에 환풍기를 계속 켜놔야 한다”며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시원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약 20평 규모의 공장. 희망온도를 26도로 맞춰뒀지만 실내온도는 29도였다. 이 공장에서는 작업자 2명이 일하고 있었다. 업체는 올해부터 근무시간을 기존 오전 9시∼오후 6시에서 오전 7시30분∼오후 4시30분으로 앞당겼다. 곽씨는 “오후 더위를 피하려고 시간을 바꿨지만 오전에도 덥고, 일찍 출근하면서 피로가 쌓이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곽씨는 “주로 전기차 배터리 부품을 납품하는데 전기차 판매가 부진한 영향인지 지난해부터 발주가 줄어 일감이 없다”며 “경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라 주문이 들어오면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일이 없다고 사람을 내보냈다가 주문이 몰릴 때 숙련공을 다시 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어려운데 올해는 냉방비까지 지난해보다 많이 나올 것 같다”고 걱정했다.
업주들은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소공인들은 여전히 힘들 거라고 말하면서도, 당장은 이동식 에어컨이라도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곽씨는 “수납장이나 작업대는 정부 지원을 받아 구매할 수 있지만 이동식 에어컨은 구매 지원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는 “사설 업체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영업 수단 같아 믿기 어렵다”며 “믿을 수 있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지원한다면 이동식 에어컨을 더 들일 의향이 크다. 이전에 없던 더위가 이어지면서 냉방장치가 더 절실해졌다”고 전했다.
공간이 그들의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