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엽 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밈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여성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정정엽(64) 작가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밈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전시 제목이 거창하다. ‘지구 독대 여자’라니.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경기도 안성) 시골에 살면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 지구와 독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외롭기는커녕 지구와 단둘이 만나는 삶이 주는 충만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살아 있다는 느낌, 가공되지 않는 원초적 기운을 느끼는 순간들이 섬세한 감각으로 포착돼 캔버스에 표현됐다. 500호 대형 캔버스 3개를 가로로 길게 엮은 초록의 화면에는 텃밭에서 채취한 각종 채소가 담겼다. 양파의 꽃, 상추의 오글오글한 눈, 보랏빛 거대한 나방 등이 비현실적으로 크게 묘사돼 자연을 대하는 작가의 경외감이 반영돼 있는 듯하다. “서양 사람들은 잔디밭을 가꿔도 텃밭은 안 가꿉니다. 우리는 작은 땅만 있어도 텃밭을 가꾸지요. 그 안에 생태적 리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장엄하게 벽화처럼 처리했어요.”
벽화 옆에는 밤하늘에 떠 있는 행성처럼 보이는 대상이 묘사돼 있다. 그것은 쭈글쭈글해진 감자에서 영감을 얻은 상상의 생명체이다. 감자에서 튼 싹은 손처럼, 혹은 촉수처럼 뻗어 나와 있다. 작가 특유의 초현실적 상상력의 매력을 보여준다.
“오래 둔 감자가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자기 몸에서 스스로 싹을 틔워내더라고요.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안에서 동물적 움직임을 느끼고 전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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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상상력은 캔버스 위에서 현실과 유리된 채 혼자 춤추지 않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작가는 “지구와 독대하기 위해 시골에서 밤길을 호젓하게 걷고 싶을 때 뭔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왜인지 자문했더니 여자로 태어난 삶이 밤길에 대한 근본적 두려움을 갖게 했다는 인식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런 인식과 자각은 이번 전시에서 ‘여성 생존기’ 연작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깊은 밤, 두려움이 없이 세상과 독대하고 싶은 세상의 소녀들’을 위한 헌사 같은 작품들이다. 최종적으로는 그런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거리 투쟁에 쓰일 것 같은 깃발을 형상화한 설치 작품까지 내걸었다. “회화로 해결되지 않는 건 글로 쓰는 것이 미술”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오는 12일까지.
은 땅만 있어도 텃